[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
Posted 2009/04/27 05:14흥미로운 과목 '성과 사회'
많은 기대를 갖고 수강 신청한 과목 ‘성과 사회’. 또 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수업 내용. 이제껏 십 수년간 받아온 공교육을 비롯하여 한 번도 세상의 대세를 거스르는 내용의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기에, 이 과목은 나에게 더욱 신선한 커리큘럼인 것 같다. 일종의 Original이라 할 수 있는 성 생활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과연 정(正)인 것인가? 그렇다면 Original의 기준은 과연 무엇이며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가? 정(正)의 집단에 반(反)하는 무리는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배제되어야 하는 옳지 못한 무리들인가?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지속적으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보는 시간이다.
강의실 안에서만 이루어졌던 지난 몇 주간의 수업과는 달리 이번에는 교수님께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대한 소개와 함께 관람 후기 과제를 내주셨다. 생활 속에서 달리 성을 다룬 매체를 접하거나 고찰해 볼 일이 없으므로, 이번 과제는 이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과 현실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몇 안 되는 기회라 할 수 있겠다.
평소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꼈던 이성애. 여자인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은 당연히 남자와 행해야 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이성 간의 사랑 외에 다른 사랑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조차 없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사실 성과 사회 강의를 들으면서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동성애 혹은 그 밖의 사회적으로 금지된 성에 대해 접해 보았지만,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단지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일종의 ‘비주류’에 속하는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에도, 한 번 옳다고 치부해버린 통념을 재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관람하다
‘마음에 내리는 눈물’, ‘사랑을 속삭이다’, ‘프리헬드’ 짤막한 세 편의 영화를 통해 나는 레즈비언들의 인간적인 감정을 보았고 또 그들의 고충을 들었다.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성영화제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동성애자의 ‘인간적 감정’, 그것이었다. 그들도 결국 이성애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사랑에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존재인 것이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던 막연한 이질감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니, 비로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이 한결 와 닿았다. 대다수가 정답이라고 믿는 ‘올바른 성’이란 과연 어느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세상에 절대적인 정답이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과 다른 모습을 띤 부류에게는 상당히 배타적이다. 성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어느 부분에 있어서든 마찬가지겠지만, 성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사람들이 특히나 쉬쉬하는 문제다. 속 시원히 터놓고 밝힐 수도, 그렇다 해서 떳떳하게 밝혀 봐도 어느 누구 따스하게 용인해주는 이 없는 동성애자들의 처지는 참 갑갑하고도 외로워 보인다.
슬픈 애노카의 이야기 '마음에 내리는 눈물'
‘마음에 내리는 눈물’ 에서는 비극적인 결말로서 그러한 이들의 아픔을 그려냈다. 엘카 케르크홉스 감독의 ‘마음에 내리는 눈물’은 5분짜리 짤막한 애니메이션으로, 도시에 사는 애노카에 대한 이야기를 별다른 대사 없이 잔잔하고도 재치 있는 영상으로 풀어간다.
벌거벗은 채로 아침잠에서 깨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서핑 보드를 집어든 채 집을 나서는 애노카. 도심을 배회하다 문득 마주한 거대한 TV속에서 그녀는 심장이 요동치게 만드는 것을 발견한다. 우아한 몸짓으로 노래하고 있는 희고 포동포동한 한 여인. 무엇엔가 홀린 듯 그녀는 여인만을 바라보며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마침내는 TV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들은 두 손을 마주 잡고 행복에 겨운 춤을 춘다. 춤이 절정에 이르자 사랑스런 키스를 나누는 둘은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러울 것 없어 보인다. 앵글이 빙글빙글 돌고, 배경음악 또한 황홀하다.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만 같은 그 순간은 그러나, 곧 끝나버리고 만다. 여인의 심장을 상징하는 와인 잔에 진한 와인을 가득 따라 주는데 와인 잔은 그것을 담아내지 못하고 산산조각 난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작품 시놉시스 중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더 큰 욕망을 갈망할 때 심장을 채우는 것이 결국 심장을 부수는 것’이다. 감독이 의도한 바가 이러한 점이었다면 내가 이해한 방향은 약간 달랐다.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한 비극적인 결말. 이 영화가 탄생한 곳인 호주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허용치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모르지만 대개의 국가들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평범하지 않은 사랑임에 틀림없다. 영화 속에 관람객들로 나오는 군중은 환호성을 지르지만 나는 그것을 일종의 웃음거리로 여기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단순한 ‘사랑의 아픔’과 그 파멸을 표현하기 위함인지 혹은 동성애에 초점을 맞추고 그 쉽지 않은 길에 대한 새드 엔딩을 표현하려 했던 것인지는 어느 대상에 중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다른 듯. 나의 경우에는 후자 쪽에서 관람했던 입장으로서, TV속 여인이 와인 잔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순간 애노카의 얼굴에서 읽혀지는 더할 수 없는 허탈함과 슬픔은 당연히 레즈비언들의 고충, 그것이었다.
동성애자의 쾌거 '프리헬드'
'프리헬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레즈비언들의 쾌거’라 할 수 있다.
신시아 웨이드 감독 작품의 프리헬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레즈비언들과 게이들의 인권을 다룬 잔잔한 영화이다. 이 작품은 2007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 75개의 영화제에서 소개되고 총 13개의 상을 수상했다(홈페이지 프로그램 노트에서 발췌).
한평생을 바쳐 사랑하는 여인 곁에 머물며 그의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묵묵히 돕는 스테이시와, 그런 그녀를 위해 자신의 여생 동안 나오게 될 공무원 연금을 승계하고자 힘겨운 투쟁을 벌이는 말기 암 환자 로렐. 경찰관으로서 남자도 하기 힘든 잠복근무를 하고 악질 범죄자를 잡아 가두는 등 뛰어난 활약을 하며 지내온 젊은 시절의 모습들과, 증세가 심해져 현업에서 물러난 후 하루가 다르게 병마로 얼룩져 가는 로렐의 얼굴은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그런 그녀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스테이시의 모습은 웬만한 남녀 부부의 모습보다도 더욱 애정어리고 눈물겨운 것이었다.
법적으로 동성애자 가족 구성을 인정하지 않는 뉴저지 주 오션 카운티 시의회장에서는 매번 회의 때마다 동성애자들의 원성이 드높다. 배심원들 간의 회의 내용과 함께 매번 부정적인 결과가 내려지자 회의장에 참석한 동성애 커플들은 분노 반 애절함 반이 섞인 얼굴로 언성을 높인다. 마침내 시의회에서 동성애자 가족 구성을 인정한다는 법안이 통과되고, 로렐과 스파이시의 이름으로 얻어낸 값진 결과이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오션 카운티 동성애자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힘겨운 싸움이 있었다. 일련의 눈물겨운 과정을 통해, 인식이 변화하는 만큼 제도적으로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이 영화. 마지막 부분에 스테이시의 손에 의해 휠체어에 올라 간신히 회의장에 들어서는 로렐의 모습은 무척이나 가슴 벅찼다. 서로를 바라보며 감개무량한 얼굴로 눈물짓는 두 여자 부부의 얼굴은 인생의 마지막 크나큰 싸움에서 이겨낸, 비단 둘만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를 승리자로 만들어낸 의미 있는 결말이었다.
기억에 남은 장면 중 하나는 점차 머리숱이 적어지는 로렐을 보며 안쓰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스테이시의 얼굴이었다. 로렐이 삭발을 하자, 망설임 없이 “나도 너만큼 잘라줘” 라며 헤어 클리퍼를 내미는 스테이시. 둘 다 짤막한 머리로 서로를 보며 배시시 웃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동성애 커플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다소 육체적이며 쾌락을 좇는 불건전한 관계라는 생각이었는데 이 영화를 본 후 완전히 바뀌었다. 남성과 남성 혹은 여성과 여성 간에도 이토록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그려질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앞으로는 혹여 주변에서 동성 커플을 보아도 예전만큼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숨쉬기조차 힘들어진 로렐의 시들어가는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고 만지며 ‘여전히 넌 아름다워’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며 성별을 초월하고 저런 존재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데 영화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보였다. 이토록 값진 승리를 일궈낸 이들 두 여자의 노력이 물론 상당히 가상한 것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통용되어 오던 법적 제도를 뜯어고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수많은 동성애자 커플들은 회의장에서 무턱대고 감정적인 싸움을 한 것은 아닌지 다소 아쉽다. 논리적인 대책을 내고 의회를 설득시켜 나가야 할 텐데 이들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로렐의 힘겨운 음성을 스피커로 들려주며 로렐이 죽기 전 승리를 맛보게 해 주어야 한다며 감정에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결정이 났지만, 제아무리 응당 낡은 관습과 제도를 다시 정립해야 함에도 이런 식의 해결 과정은 옳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프리헬드는 두 동성애자 커플의 아름다운 사랑과 일대기를 그린 영화임에 틀림없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시시콜콜한 사랑의 제스처와 눈빛들을 보며 간간히 웃음 지을 수 있었다.
예멘에서의 목숨을 건 은밀한 사랑 '사랑을 속삭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음지에의 그것인 나라 예멘. ‘사랑을 속삭이다’는 예멘을 배경으로 은밀한 사랑을, 그것도 사형에 처할 만한 중범죄인 ‘동성애’를 그린 영화이다.
프랑스인 실비 발리요는 한 예멘 여성에게서 “예멘에서 여성의 몸과 마음은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녀들은 남편의 소유물일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촬영하기 위해 무작정 예멘 땅을 밟는다. 영화가 시작하는 막을 올리고 저 문장이 첫 자막으로 나왔을 때, 화가 나면서도 억압된 예멘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정작 그 속에서 사는 여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부자유스럽고 권위 없음을 의식하고 있긴 한 것일지 의문이 들었지만, 본인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제 3자의 입장에서 뭐라 할 말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실비 발리요의 인터뷰가 진행되며 볼 수 있는 그네들의 실상은 몹시도 갑갑한 처지였다.
예멘은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로 중동국가 가운데서 아랍인의 독특한 기질과 문화적 전통을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그래서인지 옛 시대의 모습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나라이며 따라서 성에 대한 인식 또한 거의 개방되지 않은 나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예멘의 국민들에게 인터뷰 형식으로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거나 멋쩍게 웃는 등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우리나라로 이야기하자면 ‘성관계를 가져 본 적이 있느냐’ 정도의 질문이 아닐까 싶다. 성이란 자연스런 것이며 전혀 숨길만한 일이 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 어느 문화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용인하지 않고 음지에서 몰래 거론되는 점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결국 그 속에서 함께 촬영하던 현지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실비 발리요. 그곳의 실정으로서는 목숨을 건 시도일 수밖에 없는 동성애의 길에 그녀는 과감히 자신을 던졌다. 무척이나 억압되어 있는 그곳은 어쩌면 그녀들의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보이게끔 하는 요소일 수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랑은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예멘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동 국가들과 종교 색 짙은 국가들의 성적인 인식이 하루빨리 개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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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를 통해 세계 각국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실질적인 환경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우리나라 또한 결코 동성애자들이 떳떳하게 자신들의 사랑을 밝히기에 좋은 조건은 아닐 터, 제도적으로나 국민들의 인식 면에서나 조금은 상대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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